들불야학 산실 ‘광주 광천시민아파트
들불야학 산실 ‘광주 광천시민아파트’ 역사박물관으로 변신광주 서구 광천시민아파트의 마지막 주민 소영두씨가 30일 이사를 앞두고 집 안을 둘러보고 있다(왼쪽 사진). 한때 ‘들불야학’의 산실이었던 시민아파트 3개동 중 1개동이 역사박물관으로 보존된다.나홀로 거주 소영두·조성자 부부재개발 속 ‘보존’ 결정에 이사 결심광주 서구 ‘광천시민아파트’의 마지막 주민 소영두씨(70)와 조성자씨(60) 부부의 짐을 실을 이삿짐 차량이 30일 오전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207호 주민 소씨 부부는 이날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근 아파트로 집을 옮긴다. 이들을 끝으로 1970년 신축된 광천시민아파트는 55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이웃 주민들은 이미 1~2년 전 모두 이곳을 떠났다. 그들은 그러나 “차마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소씨는 시민아파트가 세워진 직후부터 부모와 형제자매까지 총 7명이 한 집에서 살았다. 부모가 세상을 뜨고 형제들은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갔다. 소씨는 결혼 후에도 가족들이 모두 떠난 이 집을 지키며 살았다. 그는 “이곳이 내게 갖는 의미는 집 이상이었다”고 말했다.소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었다. 그는 계엄군에 끌려가 각종 고문 등을 당하며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당시 자행된 고문으로 장애까지 안게 된 그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폐지를 주워가며 생활을 이어갔다.시민아파트는 한때 광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4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넓게 펼쳐진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무등산도 한눈에 들어왔다. 자로 잰 듯한 36㎡ 너비의 아파트 3개 동에는 184가구가 살았다. 각 층에는 좁은 방을 대신해 공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래식 화장실과 조리실 겸 세면장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주민들은 순서를 정해 공용 부엌과 화장실을 썼다. 소씨는 “함께 밥을 짓고 음식을 나누는 것이 우리들의 일상이었다”고 말했다.시민아파트는 광주의 첫 노동야학인 ‘들불야학’ 장소로도 활용됐다. 소씨는 “내 삶의 터전이 ‘민주시민교육의 산실’이었다는 사실은 모든 주민들에게 자랑이자 자부심이었다”고 했다.소씨 부부가 이사를 결정하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들불야학의 주무대였던 ‘나’동을 원형 그대로 보전해 역사박물관으로 만들겠다”는 지자체의 결정이 내려진 후였다. 서구를 포함해 이 일대는 2023년부터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미 주변 대부분의 상점 등은 문을 닫고 이주를 완료했다.당초 시민아파트 전체를 헐고 새 아파트를 짓기로 계획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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